피향정에서
‘연꽃 향기를 입은 정자’
최고운의 자취 따라
불우헌의 풍류가 머물던 자리
하연지 연꽃 필 무렵
맑은 향기 잔에 스며
붉은 꽃잎 옷자락에
흩날릴 때
바람은 시가 되고
연향은 노래 되어
상춘곡의 풍류가
피향정에 배었다
얼어붙은 연지 텅 빈 정자
봄 향기 채우려
겨울을 비워
나그네는
비움 속에서 ‘향기를 입는다’

정극인의 〈賞春曲〉 답사
호남 제일의 정자 披香亭
- 신라 시대 최치원의 자취
- 조선 시대 태인현을 근거지로 삼았던 불우헌 정극인
-〈상춘곡〉 속 '정자' 불우헌(不憂軒)의 실제 모델 가능성
당시 태인 지역 유림의 중심지였던 피향정 역시 그가 수시로 거닐며 시를 읊던 주요 무대
정극인은 태인 현감을 지낸 최치원을 흠모하여 그의 발자취가 남은 피향정을 자주 찾았고,
이곳에서 느낀 풍류가 〈상춘곡〉의 정서적 토대가 되었다.
피향정은 '하연지'라고 불리는 큰 연못 〈상춘곡〉에서
"청향(淸香)은 잔에 배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
- 정극인이 피향정에서 느꼈던 그 '맑은 향기(청향)'가 피향(披香, 향기를 입다)이 유래되었다.
〈상춘곡〉
- 지은이가 벼슬을 사임하고, 향리인 전라도 태인으로 돌아가 만년을 지내면서,
-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풍류와 안빈낙도의 정신을 노래한 작품이다.
- 은일지사(隱逸之士)의 유유자적한 생활의 모습
- 송순의 <면앙정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으로 이어져 강호 한정 가사의 시조


1. 무성서원 (세계문화유산)
창건 배경: 고려시대 지방 유림이 崔致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泰山祠를 세움
1484년 성종 때 정극인이 향학당을 세운 자리에 옮겨졌고,
1549년에는 신잠(申潛 신숙주의 후손)의 생사당을 배향.
1696년 숙종 때 최치원과 신잠의 사당을 합쳐 ‘무성(武城)’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
세계문화유산 등재: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 정극인이 세운 '향학당'에서 유래된 서원으로, 그가 배향되어 있는 곳
- 현가루(絃歌樓)는 "거문고 소리에 맞춰 노래한다"는 뜻으로, 〈상춘곡〉의 풍류 정신
2. 불우헌 정극인
1401년 (태종 1년) - 1481년 (성종 12년) 광주 출신
1429년 (세종 11): 생원시에 합격. 이후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
1455년 (계유정난):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태인으로 내려가 후진을 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