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불꽃의 나무

경산 耕山 2026. 1. 17. 10:52

불꽃의 나무
  -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하늘을 찢는 푸른 불꽃
사이프러스는 고흐의 기도였다
땅과 별 사이
오벨리스크처럼
외로움을 똑바로 세웠다

소용돌이치는 하늘
금빛으로 파도치는 밀밭
색채는 폭발했다
사이프러스가 되어
울음처럼 터져 나왔다

어지러운 소용돌이는
소리 없는 울부짖음
붓질 하나하나
소멸과 탄생을 넘나드는 불꽃
그 고통이 예술이 되는 순간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1889년 72.1 × 90.9 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은 고흐가 생 레미 시절, 정신병원 창문 너머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해바라기>가 고갱을 만나기 이전의 그림이라면,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은 귀를 자른(고갱과 결별) 후에 그린 그림이다. 사이프러스는 고흐에게 신성한 존재였던가 보다. 그에게 사이프러스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찌보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의 형상은 영원을 갈망하는 고흐의 외로운 모습을 닮기도 했다.

사이프러스는 항상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해바라기처럼 연작으로 그리고 싶다.
나는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느낀 감정을 그린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고흐의 편지는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감정의 네비게이션 같다. 그의 편지를 읽으면 그림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의 붓질은 격렬하고, 색채는 감정을 폭발시키듯 강렬하다. 요동치는 하늘, 휘몰아치는 밀밭, 불꽃처럼 솟은 사이프러스는 고흐의 내면의 풍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이프러스는 불안과 열망을, 밀밭은 생의 마지막 황홀을, 하늘은 그의 질풍노도 같은 감정을 분출한 것이리라. 그림 속의 소용돌이는 소리없는 아우성이었으리라. 하늘, 밀밭, 사이프러스가 고흐의 감정을 투영하는 거울이었다면 캔버스 위의 색채와 붓질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한 인간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이 그림 앞에 서면 고흐의 고독과 열정, 그리고 예술에 대한 절박한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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