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명작 감상] 겸재의 '화강백전

우록재 주인 2025. 2. 24. 10:02

겸재의 화강백전 (花江栢田)

 

내게 철원땅은
겸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화적연’ ‘정자연’ ‘삼부연
겸재가 금강산 가는 길에
철원땅에 남긴 발자국이다

오늘은 김화에서 
겸재의 발자국을 살폈다
병자호란의 승전과 아픔을 되새긴
'화강의 잣나무숲' 전투를
김화의 길잡이는 모른다

금강산길 김화역은 흔적도 없고
DMZ 이중 철책은 끝이 없구나

[화강백전] 1747년 25.0*32.1Cm 비단 담채 간송미술관 보물 제1949호

[화강백전]은 김화 백전 전투 현장에 들른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로, 화강( 花江 )은 김화 고을에 흐르는 강을, 백전( 栢田 )은 잣나무숲을 의미한다. 이 그림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이 청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화강백전 전투를 기억하고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겸재의 [화강백전]에는 다음과 같은 서사가 있다.
병자호란의 발발하자 예상과는 달리 기병 중심 청나라군은 빠르게 밀고 내려왔다. 조선팔도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김화에서도 화강백전전투(花江栢田戰鬪)가 벌어졌다. 평안감사 홍명구의 군사 2000명과 평안도병마절도사 유림의 군사 3000명 등 총 5000 군사는 김화(화강)에서 4차례에 걸친 청과의 전투에서 약 3000명의 청군 희생자를 내고 승리하였다.

홍명구는 화강 우측 산에 기대 평평한 지역에 진을 치고 무관인 유림은 좌측 산허리 잣나무 숲에 기대어 진을 쳤다. 평지에 진을 친 홍명구 진영은 대패하여 감사 홍명구는 전사했다. 청나라 기병들은 평지전투에는 강했지만 잣나무 숲에서의 전투는 약했던 모양이다. 후세에 사람들은 홍명구의 충성을 높이 샀고, 유림 장군의 승리를 대첩비로 기념했다.

겸재는 친구 사천 이병연의 김화 현감 시절, 사천의 초대로 금강산을 유람했다. 유람길에  이곳을 방문하여  화강전투를 기억하고 화강 산기슭에 빽빽이 들어선 잣나무숲을 그렸다. 유림 장군의 대첩과 감사 홍명구의 충절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화강 용양보 금강산전철 흔적이 보인다
금강산 철길은 안보트레킹 코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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