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온달산성

경산 耕山 2021. 9. 19. 00:51

누구나 저마다의 여행이 있다.
유적을 찾아 역사의 주인공과의 만남도 괜찮다 싶다.
단양군 영춘면 온달산성에 올랐다.
계단을 끝없이 오르고 올라야만 주인공 온달을 만날 수 있었다.

남한강 줄기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곳에 온달산성이 있다.
온달산성은 전망이 좋아 방어는 쉽고 공격은 어려운 천혜의 요새다.
성곽은 남한강 남쪽에 위치해 있다.
고구려가 쌓은 성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고구려가 축조한 성이라면 현재 성곽 건너편에 위치해서 신라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
그런데 왜? 이 성이 온달산성이 되었을까? 온달장군이 여기에서 전사했다는 기록이 사실일까?

6세기 중반 고구려는 왕위쟁탈전에 귀족사회 내분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신라 진흥왕의 침공에 한강지역을 내주었다.
40년 후 온달은 고구려 장군이 되어 장수왕이 확보했던 땅을 되찾기 위해 실지회복 전쟁에 나섰다.
온달산성에서 고구려군과 신라군의 대대적인 전투에서 온달이 전사했다(590년)는 [삼국사기] 기록이다.
'온달은 아단성 아래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는 기록에 해석이 분분하다.
'죽령서쪽을 되찾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온달의 각오로 보아 이곳을 아단성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온달이 죽은 '아단성'이 이곳이 아니라 한강유역의 '아차성'이라는 해석도 있다.

당시 온달은 6세기 고구려 부흥운동 시기에 전쟁의 영웅으로 등장했다.
평강공주를 만나 바보 온달은 대장군으로 고구려의 꿈과 희망이 되었다.
아마도 고구려의 옛 땅 회복의 꿈을 '바보 온달'로 전설화하지 않았을까?

평민 출신과 공주와의 결합은 역사적인 진실은 무엇일까?
'평강공주가 갑자기 귀족과의 결혼을 거부하고 동네 거지와 결혼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버지 평원왕에게 있어서 딸 평강공주의 결혼은 당대 최고의 결정사항이었을 것이다.
공주 개인의 연애사가 아니라 고구려의 중대사였을 것이다.
온달과의 결혼을 16세 소녀 평강공주의 단독 결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 

평강공주와 온달의 결혼 의미는 무엇인가?
여자 덕에 출세하려는 남자들의 욕망인 온달콤플렉스인가?
평강공주의 주체적인 여성 파워로 볼 것인가?
아니면 평원왕과 신흥세력과의 결합으로 확장해서 볼 것인가?

'바보 온달'은 지능이 낮고 단순 무식한 그야말로 단무지였을까?
무예실력을 갖춘 온달의 능력을 애써 외면하여 '바보 온달'로 과소평가한 표현이었을까?
신흥세력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조롱이 '바보 온달'을 낳았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신영복 교수는 평강공주 여성적인 영웅의 관점에서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가고 있다.'고 했는데......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낸 '여성 파워'로 읽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은
 '노예도 배우면 황제가 될 수 있다.' 는 로마의 예처럼
 '평민(신흥세력)도 배우면 귀족이 될 수 있다'는 시대상의 은유적 표현으로 읽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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