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18.
코로나 팬더믹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시국에는 옛사람과의 만남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를 만나다!

한가해서 여유로웠지만 대가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썰렁함에 죄스러운 마음으로 입장하다.

미술관 정문에 겸재의 [독서 여가]를 형상화한 조각품이 반기고 후문 숲 속에는 화가의 상징 붓이 관심을 끈다.
추사는 벼루 열 개를 구멍내고 천 자루의 붓을 몽당 붓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평생지기 관아재 조영석은 '정선이 다 쓴 붓을 땅에 묻으면 무덤이 될 정도였다'고 적어놓았다.
천재는 타고 나지만 명작은 땀에서 나온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

겸재는 추사와는 달리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어렵게 살았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스승 삼연 김창흡과 친구 사천 이병연을 만났다.
겸재는 사천과 한 스승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며 끊임없는 교학상장으로 진경문화를 개척하였다.
사천 이병연이 금강산 입구 금화현감으로 부임했다.
1711년(36세) 가을에 사천의 초청으로 스승 삼연 김창흡을 모시고 금강산을 유람한다.
여행 후 금강산을 소재로 그림 13점을 그려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을 만들었다.




이듬해 1712년(37세)에 사천의 가족들과 두 번째 금강산 기행을 한다.
유람을 마치고 그림 30점이 담긴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만들어 사천에게 준다.(애석하게 후세에 전하지 않는다.)
이전의 금강산 그림들과 차별화된 겸재만의 톡특한 금강산 그림으로 겸재는 화가로서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양현감 시절에 신임사화가 일어나 겸재의 후원자였던 스승의 일가 장동 김씨 가문이 정쟁에 휘말렸다.
김창집이 거제도 유배에서 사사당하고 그 충격으로 스승인 삼연 김창흡도 세상을 떠났다.

금강내산총도(1711년 36세 일차 금강 기행)

금강전도(1734년 59세)

겸재는 청하현감시절 1734년(59세) 국보 217호 [금강전도]를 완성했다. 금강산의 겨울 모습이다.
36세 때 그림 [금강내산총도]와 비교하면 이 그림은 긴장감, 생동감이 있다.
날카롭게 수직으로 뻗은 골산과 부드러운 토산이 강약으로 대비되며 조화를 이룬다.
[금강전도]는 초년 작품 [금강내산총도]가 있어 가능했다.
72세에 겸재는 3차 금강산 유람길에 올라 [해악전신첩] 21폭을 다시 그려서 진경산수의 절경을 남긴다.
[금강전도] 우측상단에 적힌 글은 다음과 같다.
일만 이천 봉 겨울 금강산의 드러난 뼈를
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모습 그려 내리.
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까지 떠 날리고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 양 흰빛을 드날리고
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한 도(道)의 문(門)을 가렸어라.
설령 내 발로 직접 밟아 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베개 맡에 기대어 내 그림을 실컷 봄만 같으리오! ’


사천 이병연과 겸재의 우정이 진경시와 진경산수화로 피어난 시기이다.
‘시가 가면 그림 온다’는 약속을 하였다.'
한강의 사천이 시를 보내면 양천의 겸재는 그림으로 화답하며 만든 우정의 시화첩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이다.

그 중에 겸재와 사천의 우정을 주제로 한 <시화상간도詩畵相看圖>라는 작품이 있다.
겸재는 이 그림에 ‘천금물전千金勿傳’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천 금이나 되는 큰돈을 준다 해도 남의 손에 넘기지 말라!’ 는 뜻이니
이것이 사천과 겸재의 격조 높은 우정이 아닌가.
'내 시와 자네 그림 서로 바꿔 볼 적에
둘 사이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나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 것
모르겠네, 누가 쉽고 또 누가 어려운지.'
我詩君畵換相看 輕重何言論價間 詩出肝腸畵揮手 不知誰易更誰難
소동파는 왕유의 시를 다음과 같이 감상했다.
“시 속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는 시가 있다.
詩中有畵 畵中有詩”
사천과 겸재의 제자 蒼巖 朴師海는
"사천이 바라보면 겸재의 그림이 바로 시이고, 겸재가 살펴보면 사천의 시가 바로 그림이다.
나는 두 스승 가운데 어느 분이 시인이고 어느 분이 화가인지 정말 알지를 못하겠다." 고 했다.




1751년(76세) 오월 하순 몇 일 동안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그쳤다. 비가 개인 사이 겸재는 사천의 집에 병문안을 왔다.
비 개인 하늘처럼 사천의 병이 쾌차하기를 그림으로 기원하였다.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는 이런 배경으로 그려졌다.
비온 뒤 개고 있는 인왕산의 모습을 바라보며 받은 인상과 감흥이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지 않고, 겸재의 소망을 담아 재구성했다.
겸재와 사천의 숨겨진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다.
(궂은 날씨 속에서 사경을 해매는 벗을 생각하며 정선은 조급한 마음으로, 이제 막 물안개가 피어 올라 개어가는 인왕산처럼 이병연이 하루빨리 병석을 털고 일어날 것을 빌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검은 봉우리 아래로 폭포는 내리고, 하얀 운무는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웅장한 암벽과 부드러운 운무가 대립하면서도 묘한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그 아래 기와집에 사천과 겸재가 있다.


겸재의 그림들은 동심으로 재탄생하고 있어 기분이 좋다. 동심에 비친 겸재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았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작품 전시관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