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배 '船'. 다리 '橋'. 집 '莊' 배다리집)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었을 때, '배타고 건넌다'고 하여 이 동네를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 불렀다.
선교장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悅話堂
열화당은 사랑채로서 이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 첫주인이었다.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悅親戚之情話'에서 집자했다. 친척들과 정담을 즐긴다는 의미다.
마당의 능소화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 꽃이라고도 부른다.

조금은 낯설지만 서양식 차양은 이곳을 다녀간 러시아 공사가 선물했다고 한다.
차양은 낯설지만 우정은 다사롭다.
생소한 어울림?!


열화당 뒤 초당의 의미를 알았다!
서민들의 노고와 애환을 이해하며 공부하던 방이란다.
여행에는 물음표도 필요하고 느낌표가 있어야 한다.

정감이 있는 공간의 분리, 분리라기보다는 개방의 의미가 더 커 보인다.

月下門
'새들은 연못 주변 나무에서 잠이 들었는데, 스님은 왜 달밤에 문을 두드리는가?'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는 밤이 늦다라도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라는 의미란다.
추사 김정희도 관동유람을 할 때 이 문을 두드리고 묵어가면서 '紅葉山居'란 편액을 남겼다.

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 이름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샘이 있어 맑은 물이 솟아난다는 뜻이다.
이곳에 와서 풍류를 즐긴 시인묵객들, 이래저래 가슴이 따뜻해지고 작은 울림이 있었으리라.


선교장유물전시관(백범, 추사, 석파 글씨)
虎死留皮 人死留名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


품위 있는 찻집


전통찻집에 커피예찬이라?

관동팔경 제일경 경포대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숙종(肅宗)의 어제시(御製詩)
汀河蘭岸芷繞選(정난안지요서동) 난초 지초 가지런히 동서로 둘러섰고
十里煙霞映水中(십리연하영수중) 십리호수 물안개는 수중에도 비치네.
朝曀夕陰千萬像( 조에석음천만상) 아침햇살 저녁노을 천 만 가지 형상인데
臨風把酒興無窮(임풍파주흥무궁) 바람결에 잔을 드니 흥겨웁기 그지없네.

정자 안의 「第一江山」은 양사언 또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 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

경포호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으로
옛 사람들은 경포호에는 달이 4개가 뜬다.'라며 호수의 낭만을 노래했다.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비친 달, 호수에 비친 달, 술잔에 뜬 달을 합쳐 4개의 달이라고 했는데,
'앞에 앉은 님의 눈동자에 뜬 달'은 계산에서 빠졌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 ‘경포대’ 부분
‘저녁놀이 비켜드는 현산의 철쭉꽃을 이어 밟으면서, 신선이 타는 수레를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십 리나 펼쳐진 흰 비단을 다리고 다시 다린 것 같이 맑고 잔잔한 호수가 큰 소나무 숲 속에 둘러싸여 펼쳐졌으니,
물결이 잔잔하여 물속의 모래알까지도 헤아릴 수 있겠구나.
한 척의 배를 띄워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은 곁에 동해 바다로구나.
조용하구나. 이 경포 호수의 기상이여,
넓고 아득하구나. 저 동해 바다의 경계여!
경포 호수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갖춘 곳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고려 우왕 때 박신과 홍장의 사랑이 야단스럽다고 하겠구나.
강릉 대도호부의 풍속이 좋구나. 효자, 충신, 열녀를 표창하는 홍살문이 동네마다 널렸으니,
즐비하게 늘어선 집마다 벼슬을 줄 만하다는 요순시대의 태평성대가 이제도 있다고 하겠구나.‘

강릉맛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