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터키 여행

경산 耕山 2019. 11. 12. 01:21

바야흐로 여행의 시대다.

언제부턴가 여행이 삶의 행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과연 여행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어려운 답을 찾으려고 자신을 구속하는 여행은 하지 말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지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떠난다.

'삼식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여행을 소망해 본다.

내가 소망하는 삼식이 여행이란?

여행 중에 보고 듣고 알게 되는 새로운 지식!

그 고장에서만 맛보는 특별한 음식!

그리고 여행하면서 자신을 정리하고 재충전하는 휴식!

이 세 가지 조건을 즐기는 여행이 바로 삼식이 여행이다.

혹자는 '싸가지(네가지) 여행'으로 쇼핑을 넣지만 나는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다.

즐겨 쇼핑하는 것이 있기는 하다. 여행지에서 맛보는 술과 안주류 정도.....

 

나는 아직 홀로 여행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홀로 여행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습관적으로 길벗이 있는 여행을 즐겨왔다.

이번엔 길벗으로 (앵벌이 나간)아내 대신 대학동기 L청장과 동행하기로 했다.

L청장은 자주 만나는 절친은 아니지만 부담이 없고 마음이 편안한 사이랄까?

여행지 결정은 고민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홈쇼핑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가격이 저렴한 터키 여행이 마음에 꽂혔다.

L청장은 처음이지만 나는 이미 12년 전에 다녀온 곳이다.

몰라서, 못보고 그냥 지나쳤던 터키의 모습을 자세하게, 새롭게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터키에서 삼식이 여행을 제대로 즐기자'고 마음 속에 슬로건을 높이 걸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시간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저녁시간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황량한 중앙아시아 고원은 지루했지만 인구 2천만이 사는 이스탄불의 야경은 황홀했다.

마치 은하수가 지상에 내려앉은 듯 도시 전체가 반짝거렸다.

볼거리가 많은 나라, 역사도 화려하고 자연 풍광도 독특한 터키!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터키

문명의 충돌 현장 터키에서 동과 서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있는가?

이번 여행에서는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 터키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체험하고 싶었다.

15세기 동로마를 정복한 오스만터키는 문명의 파괴보다는 조화를 선택했다.

그들은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았다.

천년에 걸쳐 찬란하게 꽃 피운 로마문화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정복자들은 몇 날 몇 일 동안 죽이고 약탈하고 불태우는 악마의 파티 후 전쟁을 마무리 한다.

진시황의 아방궁은 정복자 유방과 항우의 군사에 의해 모조리 불타 없어졌다.

이집트와 그리스 문화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화려했던 백제 문화도 나당연합군에 의해 폐허가 되어 버렸다.

고려 때는 몽고군에 의해, 임진,병자 양난 때 얼마나 많은 궁궐과 사찰들이 소실되고 또 약탈되었던가.

구한말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은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민다.

그런데 정복자 오스만은 전승자의 약탈 범죄를 금지하고 엄벌했다.

평화적인 문명의 조화를 터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인류의 행복인지도 모른다.

오스만에게 감사하고 그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오스만의 포용정책은 오히려 로마가 세운 문명 위에서 이슬람 문명을 더 크게 꽃을 피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본래 유목민족이었던 오스만터키는 이렇다할 문화가 없었다.

이동하는 유목문화에는 유물은 있어도 유적은 없다.

정복자 오스만은 로마의 거대한 건축, 넓고 곧은 도로, 난공불락의 성곽, 아름다운 원형경기장 등을 보고 적지아니 놀랐을 것이다.

정복자에게 문화의 충격이랄까 문화의 열등감은 매우 컸을 것이다. 

이 때, 오스만은 로마의 문화에 대해 배움의 자세로 접근했으리라.

참으로 지혜로운 민족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다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벤치마킹을 했다. 

이민족에 대해서도 관대했다.

기독교도들을 죽이지 않고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화합정책으로 선진문화를 빠르게 흡수했다.

얼마 후 그들은 비잔틴을 문명의 경쟁 상대로 여길 만큼 자신감도 얻었을 것이다.

그 결과 비잔틴 문명의 랜드마크인 성소피아사원을 본떠 마주보는 건너편에 더 크고 멋진 블루모스크를 건설했다.

19세기 중반 술탄 압둘메지드는 세계 최고의 돌마바흐체궁전을 건설해서 이슬람 문화의 우월성을 과시했다.

궁전 내부 건축이나 술탄이 사용하던 가구, 카펫, 크리스탈 상델리에, 도자기, 그림들은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들만 모아 궁전을 장식한 듯했다.

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나는 돌마바흐체궁전에서 보았다.

오스만 터키가 남긴 이슬람 문화는 기독교 문화를 모방한 아류가 아니었다.

웅장하고 실용적인 로마문화에 섬세함과 화려함을 더해 찬란한 이슬람 문화를 창조한 것이다.

그들은 호랑이를 보고 고양이로 그리지 않았다. 닭을 보고 봉황을 그려냈다.

처음에는 보고 배웠지만 나중에는 뛰어넘었다. 문화의 열등생에서 우등생이 되었다.

궂은비 내리는 보스포러스 유람선에서 

'문화 컴플렉스를 극복한 이슬람 문화는 위대하다!'고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를 해보았다.

가이드는 이 지역을 소재로 한  '위스크 다라' 음악에 맞춰 가사를 개사해서 부른다.

'위스키 달라 맥주 달라 소주도 달라 ........'  

원곡의 라임을 살려 개사한 내용이 재치가 만점이다.

술이 없는 이슬람 세상에 보내는 또하나의 메시지로  들리기도 하고..... 

 

 

이슬람의 자존심 블루모스크 앞에서

 

로마 건축의 아이콘 원형극장

 

보스포러스해협에서 본 돌마바흐체궁전

터키는 위대한 문명 뿐만 아니라 독특한 자연도 가지고 있어 세계의 관광객이 구름처럼 모인다.

터키에 와야만 볼 수 있는 빼어난 자연환경, 가파도키아 지역의 스머프바위군과 파묵칼레의 목화성이 그렇다.

터키는 관광수입이 재정의 70%를 차지하는 관광대국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관광자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파묵칼레에서 안탈리아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대평원을 지나며 '터키는 정말 복받은 나라다'는 생각을 했다.

하얗게 핀 목화밭은 온누리에 서리가 내린 듯 끝없이 이어지고 지루할 즈음에 올리브나무들로 연결된다.

띄엄띄엄 밀밭과 옥수수밭을 지난다. 어쩌다 비닐하우스도 보인다.

높이 솟은 종탑을 중심으로 자리한 농촌 마을은 풍요롭고 한가롭고 평온하다는 느낌을 준다.

마을 앞 키가 큰 미루나무 잎사귀는 노랗게 단풍이 들어 햇빛을 받아 바람결에 따라 반짝거린다.

아득한 평원 위에는 당연히 있을 법한 양떼목장도, 농공단지나 그 흔한 골프장도 찾아볼 수가 없다.

코니아 대평원은 터키의 곳간이라지만 경지 면적은 극히 일부였다.

꽉찬 우리네의 가을들판과 대조되는 텅 빈 아름다움이었다.

대체로 터키 남자들은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간단다. 

여자들은 여전히 집 밖으로 나올 줄 모른다.

목장, 공장, 골프장 그것은 우리의 시각일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호박을 수확한 후 호박살은 버리고  호박씨만 먹는다. 달라도 이렇게 다르다.

 

행복의 기준이 우리와는 달랐다.

그들은 교육에 관심이 덜하고 집의 크기나 재물에 대해 욕심도 없다.

한 가지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고급 카페트를 소유하는 것이란다.

카페트 위에서 오늘하루 재미있게 보내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

'내가 쓰고 남은 재물은 배고픈 사람들과 나누지 않으면 죄악'이라는 코란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코란은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중시한다. 따라서 돈을 저축하지도 않는다.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잡히지 않는다. 내일보다는 오늘을 즐기는 낙천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일이 잘 안 풀리면 모든 것은 '신의 뜻(인살라)'에 맡기는 편리한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루를 '인살라!'로 시작해서 '인살라!'로 마무리한다.

'인살라!'는 스트레스를 걸러주는 아랍인들의 행복 필터 그 자체 같다.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으니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을 것 같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소유하지 않으며 쌓아두지 않아야 한다'는

간디 경제학이 이슬람 문화에 뿌리를 둔 것은 아닌지.

 

이슬람국가는 아직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터키가 자본주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나라임엔 틀림없다.

머지 않아 터키는 제2의 중국이 되지 않을까?

 

이스탄불에서 가파도키아는 비행기편으로 이동을 했다.

해발 1000m  가파도키아지역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건조한 산악지형이다. 

전체가 사암토질로 형성된 바위여서 농사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래 전부터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나 농사라는 닫힌 시각에서 벗어나니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탄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살던 피난처였지만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어 터키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이곳 괴뢰메에서는 열기구와 지프투어 체험을 했다.

그동안 이지방 관광산업도 많이 진화했다.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버섯바위(스머프)가 있는 수도사의 골짜기를 걷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터키를 여행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열기구를 타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니.......

가이드는 열기구를 타고 싶다고 해서 다 타는 것이 아니라고 누차 강조한다.

열기구는 날씨가 허락해야 체험이 가능했다. 당국에서는 바람이 불거나 안개가 있는 날은 엄격하게 제한을 한다.

10월부터 터키는 우기이기 때문에 열기구 예약을 하더라도 날씨 사정으로 취소되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란다.

첫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열기구 현장까지 갔지만 돌아와야만 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이륙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는 건조한 고원지대의 생명수일지는 모르지만 여행자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열기구를 타기 위해서는 하루를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이튿날 열기구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떠올랐다.

새벽 어스름에 떠올라 일출 광경까지 감상하는 체험인데 구름이 끼고 엷은 안개에 가려 시야는 깨끗하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괴뢰메 고원과 협곡은 장관이었다.

터키의 그랜드캐니언캐니언이었다.

오래 전에 그랜드캐니언에서 헬기투어 체험을 했다. 그 때 헬기투어는 속도가 빠르고 소음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게다가 좌석 위치도 안쪽이어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그에 비해 터키의 열기구는 속도도 완만하고 시야도 탁 트여 일망무제, 여유있게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저기 눈을 돌리는 데마다 다양한 절경이 펼쳐지자 동화 속의 세상으로 들어온 듯 일행은 환호성을 지르고 카메라 셔터소리도 요란하다.

비좁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느라 자리를 바꿔가며 움직이자 열기구 바구니가 흔들린다.

열기구 파일럿은 위험하다고 소리친다.

협곡 바위들이 오색단풍과 어울어져 카메라 앵글에는 한 폭의 그림으로 들어온다.

그림들을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아름다운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눈과 마음으로 즐기는 수밖에......

열기구 체험에서 일망무제 파노라마로 펼쳐진 가파도키아의 풍광은 압권이었다.

그외에 볼거리는 또 있었다. 이 협곡에서 또하나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어둠을 뚫고 형형색색으로 떠오르는 수백 개의 열기구들이었다.

수백 개의 애드벌룬은 분명 새벽하늘의 꽃이었다. 그날 괴뢰메 새벽하늘엔 백화가 만발했다. 

새벽하늘의 꽃들은 자연의 아름다움 위에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아니던가.

조물주 위에 군림한 인간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새벽하늘에 만발한 꽃들의 화려한 비행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남을 것이다. 

일행 중 서울에서 왔다는 세련된 여성은 열기구 탑승을 자기 생애 버킷리스트에 올려야겠단다.

 

가파도키아의 애드벌룬

아침식사를 하고는 지푸투어를 했다.

사륜구동  SUV차량에 4명이 한 조가 되어 2시간 동안 고원협곡을 드라이브하는 프로그램이다.

턱수염이 매력적인 늙은 운전기사는 몇 마디 배운 우리말로 친밀 관계를 조성한다.

기사는 우리가요를 준비하여 들려준다. (나도 모르는) 요즘 아이돌 가수의 빠르고 경쾌한 댄스곡이다.

지프는 덜컹거리는 험준한 비포장길을 달려 가장 높은 전망대로, 최근 발견했다는 동굴교회로 안내한다. 

가는 곳곳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협곡은 가을 햇쌀 아래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보다 날씨가 좋아서 협곡은 제 모습을 숨기지 않고 가파도키아의 깊숙한 속살을 다 보여준다.

열기구를 타고 숲을 보았다면 지프를 타고는 나무를 보는 격이다.

열기구에서는 웅장한 그랜드캐니언으로 보였는데 지프를 타니 영락없는 브라이스캐니언이다.

한 마디로 괴뢰메 협곡은 그랜드캐니언과 브라이스캐니언을 합쳐 놓은 것 같다.

가격이 좀 과한 옵션이었지만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했을 것 같다.

열기구나 지프의 운전기사는 체험을 끝낸 후에는 홍차나 와인을 한 잔씩 주면서 자연스럽게 팁을 요구한다.

서서히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가는 터키의 뒷모습을 보고, 입에 대는 와인 맛은 씁쓸했다.

 

지프투어에서 본 파노라마 골짜기

사람들은 바위를 그들의 신앙에 활용했다.

바위의 질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사암에는 동굴을 만들고 화강암처럼 단단한 바위에는 조각을 했다.

경주 남산의 화강암들이 부처님이나 탑으로 신앙화되었다면 이 지역 사암동굴에는 성모마리아와 예수님 벽화로 채워져 있다.

이곳은 로마 시대 기독교도들의 피난처였다. 모진 탄압 속에서 피어난 동굴교회들은 기독교성지이자 순례지가 되었다.  

네로황제의 기독교 탄압이 이렇게 훌륭한 관광자원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 터키 사람들은 네로황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비둘기집 같은 바위 구멍(동굴교회)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인생을 최악의 조건에서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

'신앙은 고난 속에서 단단해지고, 고통을 먹어야만 위대해지는지......'

무신론자인 내게는 특이한 볼거리로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다만 이교도 관광객들에 의해 나날이 훼손되는 벽화들을 어찌할 것인가?

걱정도 되고 어떤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안탈리아에서 이른 아침에 유람선을 탔다. 조금 격을 높여서  '그냥 지중해 크루즈라고 생각하자.'

예부터 지중해, 에게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바다는 휴양 공간이었다.

로마 황제들이나 귀족들이 여기에서 누구와 어떤 만남을 가지며 어떻게 즐겼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이 살기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페르시아와 그리스, 기독교와 이슬람은 그토록 전쟁을 벌였던 것인가?

그 옛날 오디세우스가 지났던 바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다스리던 바다, 이 역사의 바다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잠겨 있을까?

지중해를 지키던 안탈리아 요새는 오늘 아침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고요한 지중해 유람선 위에서 해맞이를 했다. 험준한 해안절벽이, 깨끗한 바닷물이, 잔잔한 물결이 아침해에 깨어난다.

멀리 보이는 해안 절벽 위 고급 호텔들과 별장들의 스카이라인이 선사하는 눈맛, 참 좋다!

터키에 다시한번 올 기회가 있다면 저 절벽 위의 숙소에서 일출을 감상하며 또하나의 인생페이지를 넘기고 싶다.

 

지중해 유람선투어를 마치고 나오는데 경찰들이 길을 막고 열어주지 않는다.

오늘이 터키의 국경절, 터키의 개천절(1923. 10. 29)이란다.

경찰들이 시가행진 행사를 위해 도로를 차단하고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책임자의 결정이 필요하니 15분 기다리란다.

우리 일행의 시계는 바쁘게 돌아가는데 경찰들은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다.

현지가이드가 나가 사정을 해도 요지부동, 불친절하기가 이를데 없다.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듯 보였다.

마침 터키 한 소녀가 우리 일행에게 접근하더니 K-POP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일행 중에서 누가 방탄소년단 노래를 틀어주니 춤을 따라추면서 흥을 돋운다. 

나도 잘 모르는 우리 문화를 우리말도 모르는 이국소녀는 잘도 따라 부른다.

알게모르게 조금씩조금씩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문화강국 반열 위에 올라 있었다.

문화강국의 자존심 때문인지 경찰들에게 받았던 불쾌함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15분이 지났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30분을 기다렸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 저 멀리 다른 출구로 돌아가란다.

'그러면 처음부터 돌아가라고 안내를 했어야지. 이 썩을 놈들아.'

국경절 퍼래이드 행사는 좀처럼 맞기 어려운 기회인지라 시간을 내서 참관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패키지 여행객이다.

시간이 빠듯한 일정이다.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동해야 한다.

오랜만에 자유가 통제된 사회에서 통제라는 불편한 체험을 하니 불쾌했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내가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기는 하구나' 하고 긍정을 해본다.

일반 시민들에게도 통제가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터키에는 사복경찰이 많단다.(지도자의 권위가 위협을 받아 불안할 때 나오는 사회현상이 아닐까.)

알고보니 에르도안이라는 터키 대통령도 필리핀의 두테르테, 미국의 트럼프처럼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지난 해에는 쿠테타로 축출될 뻔 했고, 올 3월에는 이스탄불 시장 선거가 있었는데 개표과정에서 여당이 지지한 후보가 뒤지니까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재선거를 하도록 억지를 부렸다는 인물이다.

5월 재선거 결과는 3월보다 더 큰 표 차이로 야당후보가 당선되었다니 터키 사람들의 속앓이도 짐작이 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는 등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정책으로 지탄을 받고 있단다. 

자신을 21세기 술탄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터키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에르도안 권력의 종말은 어찌될 것인가?

우리의 현실도 많이 답답한데 남의 나라 걱정을 하고 있는 나는 제정신인가?

 

 

지중해의 일출

 

파묵칼레의 석양/목화성은 물관리가 되지 않아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삼식이 여행 중 하나가 그 고장에서만 맛보는 현지 먹거리 체험이다.

세계 3대 요리 중 하나가 터키요리라고 하지 않던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터키 현지음식과 특별식 위주로 음식을 제공한다 해서 기대가 자못 컸다.

'기대가 크면 반드시 실망이 따르는 법이다.'

이번 여행에서 터키 음식의 대명사인 케밥은 5가지 종류를 먹었다는데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음식이름도 기억에 없다.

내가 먹은 케밥들은 대체로 빈약하고 부실했다. '이런 것이 케밥인가?'

덤으로 제공하는 빵을 본식처럼 먹었다. 케밥에 실망이 컸다.

백종원이 TV에서 극찬했다는 '카이막'도 그저 그랬다.

꿀 위에 토핑크림 올려놓은 것을 야단스럽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끼니 때마다 위장은 채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기억은 드물었다.

맛 없는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를 때의 불쾌감, 괜히 먹었다는 후회 감정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현지음식이 맞지 않은지 룸메이트 L 청장은 설사증세로 화장실을 뻔질나게 드나든다.

특식으로 제공되는 것은 거리의 음식이었다.

참깨를 묻힌 커다란 도너츠 모양의 깨빵, 터키 아이스크림, 석류 쥬스 등이 때에 맞춰 제공되었으나

내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과 저녁식사는 정말 부실했다. 게다가 식사시간에 중국팀들과 만나면 최악이다.

 

그들은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웠다. 중국팀이 지나간 자리는 그나마 음식들을 싹쓸이해서(?)  초토화되었다.

또한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술자리가 자유롭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 

일행 중 몇몇은 소주를 몇 팩씩 준비해 가지고 왔다.

그런데 소주는 있지만 안주가 마땅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파묵칼레에서는 몇몇이 작당하여 호텔 밖에 있는 양갈비집을 찾았다.

그곳엔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양갈비는 먹을만 했다.

양갈비를 안주삼아 한국소주에 터키맥주를 섞어서 마음껏 마셨다. 

그 이벤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행사를 탓하고 호텔음식을 탓할 일이 아니다.

이런 일에 불평불만을 하다보면 여행을 망치게 된다.

저가 여행을 선택한 내 탓일 뿐이다.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저가의 여행의 장점도 보인다.(가격 대비?)

저가 여행은 본래 호텔 이동거리가 멀고, 쇼핑관광을 해야하고, 옵션관광이 많고, 또 먹거리가 부실한 종합선물세트가 아니던가?

 

 

 

카이막과 피데 요리

 

 

이번 여행 중에 대학동기 친구 남해정을 우연히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처음 만났지 싶다.

대전에서도 만나지 못한 인연이 낯선 타국에 와서 해후하다니........

친구와는 여행사가 달랐지만 여행코스가 같기 때문에 서너 차례 만날 수 있었다.

안탈리아에서 같은 호텔에 투숙했을 때는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밤늦도록 살아온 얘기를 했다.

다행히 친구는 아들들이 잘 커서 제대로 자리잡았고, 자기가 하는 일도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이번 패키지 일행들은 좀 이질적이었다.

동행끼리만 어울리고 일행들하고는 따로국밥처럼 놀았다.

여행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매했다.

일행 중에서 어울렁더울렁 소통할 수 있는 길벗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은 컸다. 

일행은 부부, 자매, 모녀, 동서, 친구, 교우, 동창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길에 올랐을 것이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누가 나이를 묻길래 60이 넘었다는 비유로 

우리는 지난 팔월 말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여행을 왔다고 하니,

다짜고짜 연금을 화제로 삼아 연금제도가 잘못되었다는 둥 뜯어고쳐야한다는 둥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던진다.

그들과의 대화나 토론은 무의미했다.

진심이 통하지 않으니 그저 입을 다물 수 밖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인생들이었다.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가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그야말로 '사촌토지구입배탈증세'가 아닐까.

 

일행 중에 노부부도 있었다. 80언저리의 연세쯤 되어 보인다. 

그 연세에 장거리 패키지 여행을 하다니 부부의 건강관리가 부러웠다.

부부는 다정하게 웃으며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뷔페식사 때 보니 부인이 남편을 지성으로 위하는 모습이다.

남편은 자리를 지키고 부인이 남편 음식까지 알뜰하게 담아다 나른다.

사진에 조예가 깊은지 부부는 그 무거운 전문가용 카메라와 배낭을 메고 다녔다.

멀리서 지켜보면서 인생의 모델로 삼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가가서 사진에 대해서 건강에 대해서 대화를 해보았다.

부에게 한 마디 말을 건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조근조근 끊임없이 말씀을 하신다.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남편은 자기의 옛이야기, 부인은 자식 이야기를 구구절절 잘도 이어가지만 그렇게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고 싶지 않은데.......

부부의 이야기엔 쉼표도 마침표도 없었다. 이분들에게는 입은 있지만 귀는 없었다.

그분들의 말씀을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 작고 좁았다.

아하! '나이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만고의 진리를 나는 은연 중에 되새기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은 좋은 말씀이 아니다. 

아무리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금싸라기 말씀일지라도 분위기를 읽지 못하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자기 얘기만 하는 시대,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시대, 이른바 소통 부재의 시대!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단절감은 나날이 두터워지고, 외로움은 점점 깊어만 간다.

오히려 사이버 세계에서 소통이 더 자유롭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는 외로운 늑대'라고.....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는 저서에서

하이-컨셉, 하이-터치를 강조하며 논리(머리)보다는 공감(마음)을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소통부재 시대의 대화는 가슴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그중에서 현지가이드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자기인생을 확실하게 살고 있었다.

20여 년 홀로 배낭여행을 했다는 작은 체구에 당차고 야무진 여성이다.

리더십도 있고 카리스마도 강했다. 여행경험도 풍부하고 책임감도 강했다.

한번은 노부부가 여행 중 불만을 제기하며 언성을 높인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았고, 지혜롭고 침착하게 일처리를 한다.

노부부는 육두문자로 분노의 감정을 분출했다는데 이 여성의 얼굴에는 표정변화가 없다. 

배테랑 가이드답게 그녀는 노부부로 인한 침울한 여행 분위기를 몇마디 말과 웃음으로 바꾸어 버린다. 

옵션관광에 쇼핑관광을 유도해야만 하고, 그에 따라 불평불만도 심심찮게 나오는

저가여행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진행이 자연스럽다.

터키에서 몇 년 더 생활한 후 소수의 테마여행객을 위한 작은 여행사를 차리겠다는 비전도 말해준다.

녀는 그렇게 그의 노래를 즐겁게 부르며, 또 자신의 세상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여행수첩에 메모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여행 가이드 준비하시는 거예요?" 하고 궁금해 한다.

나의 인생노래를 작사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나의 인생 노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나의 인생을 표현한 노래는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불러왔던 노래는 그런대로 행복한 노래였다.

지금은 부르고 싶은 노래보다는 듣고 싶은 노래가 더 많다.

 

지금까지 나는 '꿈을 심어주는 사람'으로 노래했다.

이제는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으로 노래해야겠다고 방향을 정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아지는 것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채워가는 것이다.

내 인생을 여백을 조금 남기고 행복한 노래들로 채웠갔으면 좋겠다.

다니엘 핑크 말대로 머리로만 채우지 말고 좀더 많이 손으로 발로 채워야겠다.(1t의 지식보다 1g의 경험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독서가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면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라고 한다.

두 발로 독서!! 그것이 좋겠다.

 

 

쉬린제 마을에서 일행들과 커피 한 잔/뜨거운 모래로 커피를 끓인다.

 

이슬람의 심장 모스크 내부/열심히 코란을 읽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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