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하이쿠 몇 편

경산 耕山 2019. 2. 11. 15:14

간결함의 미학

 

동 트기 전 일어나 떠나는 내 님보다도 오래 동안 머무는 대나무 잎의 이슬   -이즈미 시키부

그 어느 쪽을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할거나 나를 잊은 사람과 잊혀져 버린 나와   -이즈미 시키부

모든 이들이 낮잠을 자는 것은 가을 달 때문   -마쓰모토 데이토구

가는 봄이여 새 울며 물고기의 눈에는 눈물   - 바쇼

가는 나에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 두 갈래   -마사오카 시키

장난삼아서 등에 없은 어머니 너무 가벼워 눈물이 흐른다 세 걸음도 못가   -이시카와 타쿠보쿠

도쿄로 떠나는 아침 엄마는 유독 늙어 보인다 오늘 헤어졌다가 보지 못할 세월만큼   - 다와라 마치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이싸

미안하네, 나방이여 난 네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불이나 끄는 수 밖에   -이싸

붉은 꽃잎 하나 소똥 위에 떨여져 있다 마치 불꽃처럼!   -부손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나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시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싸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 번의 가을이 찾아오네   -부손

한밤중에 잠이 깨니 물항아리 얼면서 금 가는 소리   -바쇼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싸

마타리 풀이여. 넌 무엇에 대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니?   -이싸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우네   -소세키

생선 가게 좌판 위 도미 잇몸이 시려 보인다   -바쇼

목욕한 물 버릴 곳이 없다 온통 벌레들 울음소리   -오니츠라

한낮의 정적, 매미 소리가 바위를 뚫는다   -바쇼

내 앞에 있는 사람들 저마다 저만 안 죽는다는 얼굴들일세   -바쇼

몸무게 달아보니 65 킬로그램 먼지의 무게가 이 만큼이라니!   -호사이

꺾어도 후회가 되고 꺾지 않아도 후회가 되고 제비꽃   -나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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