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닭아 닭아 미안하다

경산 耕山 2013. 6. 19. 10:46

 

 

 

닭아 닭아 미안하다!

 

나는 지난 현충일에 내가 저지른 만행을 스스로 규탄하며, 후회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비명에 간 수탉을 추도하기 위해 몇 자 적는다.

배농사를 짓다가 그만 둔 지 5년, 올 삼월부터 텃밭일을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나무 몇 그루를 잘라내고 다듬어서 동쪽 텃밭만을 시작했다. 얼마 후 마음이 변하여 서쪽에도 또 하나의 텃밭을 조성하였다. 배농사는 그만하고 채마밭이나 일굴 요량으로 시작한 텃밭이 이제는 면적이 확장되고 파종 식물이 다양해져서 인터넷농사꾼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농사일이 늘어났다.

텃밭 조성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텃밭의 원주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원주인은 수탉 한 마리, 볏이 화려하고 빨간 날개 깃털과 검은 꼬리털이 잘 얼룩진 멋진 토종 장닭이다. 이 닭은 인간의 손을 떠난 지 오래 되었다. 누가 모이를 주지 않아도 제 스스로 묵정밭을 오가며 지렁이 굼벵이 씨앗 등을 헤집어 먹고 살아가는 말하자면 산닭이다. 수탉은 본래 암탉과 병아리를 거느리고 다녀야 더 멋스러워 보일 텐데 저놈의 식솔들은 다 어디로 가고 저 혼자뿐인 것이 못내 외로워 보이지만 저 놈은 그것에 익숙해 있는지 저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 부부가 농장에 나타나면 꾸꾸꾸...... 거리며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러면서도 수탉은 항상 저만치서 우리를 경계할 뿐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일종의 경계경보를 발령한 셈이다. 어쩌다가 작업 중에 저 있는 쪽으로 접근하면 온 농장이 떠나가도록 성가시게 울어댄다. 우리 부부가 텃밭에서 일하는 동안 이놈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리 주변을 맴돌다가 날이 어둑해지면 제 숙소로 퇴근을 한다. 숙소라야 별도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농원과 경계한 대숲 속 어디에서 잠을 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텃밭에서 수탉 한 마리와 우리 부부는 친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되었다.

나는 입때까지 수탉이 새벽만을 알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이 놈의 퇴근 시간도 일정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부부가 해가 지는 줄 모르고 텃밭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이놈은 밭 주변을 휘돌아 꾸꾸꾸꾸 소리를 내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제 잠자리를 찾아가는데 며칠을 지켜보니 그 시간이 일정했다. 그때부터 이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우리도 하루 일과를 마치게 되었다. 아니 이놈은 퇴근 시간뿐만 아니라 퇴근길도 정해놓고 그 길로만 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활의 원칙을 지키며 정도를 걷고 있었다.

일전에 서쪽 텃밭에 들깨 모종을 받으려고 씨를 뿌려 놓았다. 일이 바빠서 한 동안 잊고 있다가 어느 날 퇴근 후 들깨 모종에 물을 주려고 가 보았더니 몇 군데가 어지럽게 파헤쳐져 있었다. 발자국이나 파헤친 모양으로 보아 이놈의 소행이 분명했다. 지난 5월에는 쌈채소를 잘 키워 주말에 삼겹살 파티를 계획하였더니 고라니란 놈이 전날 밤에 먼저 다녀가 실망이 컸는데, 이번에는 깨를 심어 고소한 재미도 보기 전에 원주인이 시식을 한 것이다. 주말 농군이 조공을 바치지 않자 원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라니와 수탉은 시간차를 두고 우리가 공들여 쌓은 탑을 이렇게 하룻밤에 무너뜨렸다. 이때부터 나는 저놈을 보는 시각을 달리했다. 저놈에게 인정했던 원주인이라는 기득권을 파기해야겠다. 더 이상 공존의 상대로 여기지 말자. 너는 이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퇴치의 대상이다. 너는 고라니와 함께 우리 텃밭의 공공의 적이다. 무너진 공든 탑에 대한 좌절감은 극도의 증오감으로 바뀌었다. 오늘따라 이놈이 마구 파헤쳐 놓은 호박이며 해바라기 심은 자리가 더 크게 보인다.

현충일이다, 내가 지도하는 사진동아리 학생들이 우리 농장에 체험학습을 왔다. 나는 체험학습에 산닭 잡기 프로그램을 넣었다. 학생들과 텃밭작물을 둘러보는 중에 이놈은 조용하던 농장 분위기가 바뀐 것에 놀랐는지 제 갈 길을 잃고 시끄럽게 꼬꼬댁거린다. 학생들과 고추 심은 이랑을 넘어 땅콩 심은 이랑으로 이동하는데 이놈은 당황을 했는지 스스로 배나무 울타리 코너로 몰려 푸드덕거린다. 학생들의 관심이 일제히 울타리 쪽으로 쏠린다. 농작물 체험은 뒤로 미루고 산닭 잡기 체험으로 프로그램을 바꿔 수탉 쪽으로 접근했다. 학생들은 처음 겪는 생동감 넘치는 장면인지라 재미가 있어 소리를 지르기만 할 뿐 누구도 수탉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내가 시범을 보일 수밖에...... 내가 한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니 이놈은 더 크게 꼬꼬댁거리며 상하로 푸드덕거릴 뿐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 이놈은 죽을 힘을 다하여 자신의 털을 뽑아 저항하며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놀라 솟아오르는 닭을 피하려다가 그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겁먹은 내손은 허공을 몇 번이고 움켜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닭의 사투가 마무리 될 때 쯤 나의 엄지손가락에는 어느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수탉과의 혈전(?)은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 닭의 발목을 끈으로 묶어 놓고 학생들은 ‘산닭 사냥’의 쾌감을 마음껏 누린다. 난생 처음 체험(정확하게 말하면 체험이 아니라 적극적인 구경)인지라 놀라 도망치려는 닭을 향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전송하고 난리법석이다.

잠시 후 저 사냥감의 목을 누가 비틀 것인가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복불복 게임이 벌어졌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 달 것인가와 같이 학생들은 옥신각신 게임 방법을 두고 다투는가 싶더니 TV에서 자주 보던 방식대로 저승사자를 한 명 결정한다. 오늘 사냥감의 망나니로 선택된 아이는 아주 겁먹은 표정으로 멀리서 사냥감의 머리를 겨냥하여 막대기를 던지는 정도다. 닭은 불안해서 던지는 막대기를 피해 이리저리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른다. 그 때마다 닭의 털이 산지사방으로 흩날린다. 이런 방법으로는 닭에게 고통만을 더해주는 꼴이 될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닭 잡는 시범을 보여주게 되었다. 우선 주위를 물린 다음 나는 두툼한 몽둥이를 움켜잡고 심호흡을 했다. 닭이 진정하기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살며시 접근하여 몽둥이를 들어 닭의 머리를 향해 단숨에 내리쳤다. 닭은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져 일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또 한번 승리감에 소리를 질러댄다.

닭의 목을 향해 몽둥이를 내려치는 순간 나는 후회를 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솔한 소행을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불현듯 학생들에게 ‘배추의 마음’이라는 시를 가르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추벌레를 걱정하여 꼭 동여매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을 본받자고, 배추벌레의 생명도 존엄하다고 힘주어 말했던 기억이 바늘이 되어 가슴을 콕콕 찔러왔다. 지금 나는 교실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던 거룩한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무자비한 생명의 파괴 행위를 감행하지 않았는가. 言行一致라는 말씀을 너무 쉽게 배반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비명횡사한 우리 농원 원주인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저지른 우리 비선농원 잔혹사에 대해 스스로 모멸감을 느꼈다.

우리 농원 원주인은 피비린내 나는 유월이 오기 전까지 온종일 인적 뜸한 텃밭을 지키며 평화롭게 잘 살아왔다. 그런 주인에게서 인터넷 따위나 검색해서 농사를 짓겠다고 닭의 삶의 터전을 무단 점령하더니 급기야는 농사에 피해를 준다고 농장 터줏대감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이 아닌가. 진실로 원주인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강제로 빼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제 영역을 지키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상대를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던 농장에 수탉과 나는 서로 존재감을 주고받는 사이로 알게모르게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중한 관계를 수탉이 죽은 후에 깨달은 것이다. 아, 난 참 바보처럼....... 아, 난 참 바보처럼.......

닭과의 공존을 왜 생각해 보지 못했던가. 수탉이 없는 농원을 왜 상상해보지 않았는가. 한 줌밖에 안 되는 씨앗들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한들 닭의 목숨만 하겠는가.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닭이 준 피해는 정작 얼마 되지 않았다. 내 마음으로 느낀 피해가 컸던 것이다.

어제 산닭 잡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찔린 엄지손가락을 치료받으면서 남의 생명을 뺏은 죗값으로 이 만큼의 고통이라도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닭아 닭아 미안하다. 네가 없는 비선농원은 너무너무 적막하구나.'

'꾸꾸꾸꾸........ 너의 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있다.'

농장을 호령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던 수탉의 그 모습이 그립다.

안 되겠다. 다음 신탄진 장날엔 병아리 한 쌍을 사다 놓아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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