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집 [우록재에 달 뜨거든]

글벗님들의 도움을 받아 시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독자님들에게 배움을 청한다......
목차
경산시집서 7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 10
1부 초당에 비 내리고 13
초봄 / 喜雨 / 농부의 계절 / 돌나물 / 새순 /
꽃바람 / 단비1 / 단비2 / 비선 유월 / 살구 /
고라니 / 제초작업1 / 제초작업2 / 참깨밭에서 /
열매 / 소나기 / 팔월 끝자락 / 가을이 와도 /
감 / 겨울나무1 / 겨울나무2
2부 산 넘어 넘어 35
계족산성 / 매물도 가는 길 / 홀로섬 연가 /
흔들바위 / 울산바위 / 대관령휴양림에서 /
대승폭포 / 하늘길 / 대왕소나무 / 흘림골 /
월출산 / 백화산에 올라 / 무등산 옛길 /
無等에 올라 / 강화섬에서 / 석모도 안개 /
그림 속에 내가 있다 / 농암종택에서 /
시골밥집 / 가을남자 / 통도사 가는 길 /
선유도 냄비 / 무소유길 / 佛日庵 / 상사화 /
완도의 아침 / 백운동 원림 / 순천만 갈대 /
봉정암 가는 길 / 장수대에 올라 / 초간정에서 /
淸凉遊山 / 그 겨울 한탄강
3부 물 건너 건너 69
로마에서 / 오르비에토 성벽 / 치비타 마을 /
발도르차 초원 / 시에나의 골목 / 빈치 마을에서
허리우드의 허리 / 샌디에고에서 /
요세미티 가는 길 / 요세미티 폭포
프레즈노를 떠나며 / 카지노에서 /
엔텔로프케니언 / 모뉴먼트 밸리에서 /
그랜드캐니언에서 / 코르티나담페초 /
트레치메 / 아우론조 산장에서 /
포다라 산장에서 / 돌로미티 화원 /
에델바이스 / 라가주오이 가는 길 /
크로다 산장에서 / 돌로미티 길벗
4부 우록재에 달 뜨거든 95
春望 / 술내음 / 혼술 / 우록재에 달 뜨거든 /
여름 초당에서 / 飛仙酒 / 술시에 /
비선주 한 동이 / 杯中物 / 늦여름 비는 내리고 /
즐겁지 아니한가 / 내 벗이 / 나비 /
술벗1 / 술벗2 / 술벗3 / 자화상 /
月下獨酌 / 시월 우록재/성헌 화답시
5부 시나브로 117
추사 歲寒圖 / 추사 鷄山無盡 /
혜원 美人圖 / 第一江山 / 원교체 / 별 / 아내 /
선물 / 耳順 / 위험한 여정 / 학교가 아프다 /
책 / 세모에 / 백수1,2,3 / 여행1,2,3 /
풍류1,2,3 / 귀거래사 / 농사일 / 인생 / 詩眼 /
글벗, 길벗 소회 139
耕山詩集序(원문) 146

경산시집서(耕山詩集序)
이백이 “슬픔과 원망이 시인을 일으킨다.” 하였으니 가슴 속의 만 가지 회포가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노래가 되고 시가 된다. 그러나 중요하고 또 귀한 것은 시를 짓는 일이 외양만 화려한 속기에 떨어지지 않고 정성의 도에 근본을 두어야 詩道는 비로소 화목하고 맑으며 한가로우면서도 우아한 격조를 간직할 수 있으니 이것이 참으로 詩道가 어려운 점이다.
경산 김영만 선생은 나의 오랜 친구이다. 평생 후학을 가르치다가 정년 하였는데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고전을 깊이 공부하고 있다. 경산은 마음이 솔직하고 소탈하며 꾸밈이 없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움을 사모하지 않으며 맑고 깨끗하며 소박하다. 평소에 시문을 애호하여 읽고 헤아리며, 또한 한가한 겨를에 시문을 지은 지가 오래되었다. 아름다운 시편들을 시 주머니 속에 보관한 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 바야흐로 간행하고자 하면서 서문을 부탁하니 글도 잘하지 못하는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러나 동문수학한 정이 있고, 기운이 서로 통하는 사이인데 감히 끝내 사양할 수 있겠는가.
경산의 시는 반성에서 비롯한다. 교단에 있을 때 가르침이 정밀하지 못했음을 항상 마음 속에 뉘우치고 있으며, 현재 교육이 온전하지 못함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가 그리움의 감정으로 이어져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으니 진실로 순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경산은 또 보잘것없는 것들을 불쌍히 여겨 들꽃이나 작은 자갈이라도 밟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 경산은 여행을 매우 좋아하여 천하의 절경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은둔하고 있는 비경을 깊이 찾아 감탄하고 깨달은 것들을 모두 시에 담았으니, 시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자라 할 수 있다.
경산이 하는 일 중에 가장 부러운 것은 고전에 열중하며 배우기를 좋아하고 깊이 공부하는 정성이다. 계묘년 여름에 경산과 함께 추사고택을 탐방했는데, 경산이 여러 주련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각 서체의 특장과 예술성을 깊이 알고 있었고, 추사기념관의 유물과 전적에 정통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시 중에서 <세한도> <계산무진> <농암종택> 등의 시는 경산이 옛것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사시의 증거가 될 것이다. 경산은 詩道를 이미 잠잠히 깨닫고 마음으로 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시 <詩眼>에서
“눈으로 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시로 남기는 것만 못하다
깨달음이 없는 시는
남기지 않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였으니 비록 경산의 詩學과 詩道가 여기에서 다하였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계묘년 섣달 어느 날 먼동이 틀 때 구니와 남쪽 창가 아래에서 성헌이 기록한다

책을 펴내며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
퇴직 무렵 草堂 한 칸을 지었다. 한학을 하는 글벗 성헌 이규춘 박사가 초당의 이름을 우록재(友鹿齋)라 이름하고 이에 맞는 시 한 편을 부쳤다.
靑麓小築自淸幽
不關世事百念休
雨讀晴耕時望雲
高枕夢中長臥遊
푸른 산기슭 작은 초당 하나 스스로 맑고 그윽해
세상일에 관심 두지 아니하니 모든 근심이 사라지네
비 오면 글 읽고 날 개면 밭을 갈며 때때로 구름을 보며
높은 베개 하고 누워서 오래도록 세상을 유람하네
인생 후반전을 이렇게 살면 좋지 아니한가라는 권유였다. 나의 일상이고 내가 추구하는 삶이 ‘독서와 여행’임을 성헌이 잘 짚어주었다. 산밭을 일구고 글을 읽다가 때에 맞춰 세상 유람도 하고 술 익으면 용수 박아 벗들도 불렀다. 나의 작은 초당 우록재는 그 옛날 상촌 선생의 세 가지 즐거움으로 살아가기에 그런대로 만족한 공간이다.
문을 닫고 마음 가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 맞는 벗을 맞는 것
문을 나서 마음 드는 곳을 찾는 것
소소한 일상을 즐기면서 작은 깨달음도 있었다. 그 작은 깨달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고, 즐기는 것은 글로 남기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으로 느낌이 있으면 시나브로 글로 다듬었다. 거친 발효주를 정제하면 순도 높은 증류주가 나오듯이 시어도 양조의 원리와 다르지 않았다. 일상생활을 증류해서 깨끗하고 향기 있는 시어로 다듬어서 나만의 빛깔과 향기가 있는 시 쓰기를 소망했다.
어찌 보면 나의 시는 시라기보다는 군더더기를 제거한 문장에 불과하다. 글로 되지 않은 생각들을 버리기 아까워 가까스로 붙잡아 두다 보니 영글지 못한 표현이 많다. 생각을 붙잡기 위해 여기저기서 빌려온 시어와 문장도 있다. 알맹이를 모방하고 껍데기를 달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백수의 일상에 가벼운 의미를 부여한 생활의 읊조림으로 읽어주시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끝으로 여행할 때마다 함께한 아내와 잡스러운 졸시를 모아 세련된 감각으로 편집해 준 허난희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23년 겨울 우록재에서 경산 쓰다.
글벗, 길벗 소회(素懷)
박창연(호수돈여고 교사)
교사에게 방학은 학기 중에 쏟아부었던 에너지를 채우는 소중한 시간이다. 방학이 되면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도 처리하고 시간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지만, 방학이 내게 주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은 경산 님의 안내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이다. 그 여행이 주는 채움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방학을 기다리게 하며 내 맘을 설레게 한다.
학생들 앞에서 문학작품을 가르치는 일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는 그동안 늘 작품을 분석해서 내용을 이해시켜서 입시 문제 풀이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데 경산 님과 함께하는 인문학 기행을 통해 작가의 숨결이 닿는 곳을 찾아가 보고 작가의 오랜 손길이 만들어 낸 작품에 관한 스토리를 아는 경험을 한 후에는 문학작품을 설명하는 나의 말에도 근육이 생기고 힘줄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문제 풀이에 급급해서 작품을 대할 때와는 다른 생동감이랄까 또는 뿌듯함이나 충만함이다. 경산 님과 함께하는 여행이 주는 가슴 벅차오르는 호사다.
경산 님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그냥 보고 지나가면 그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고 하시며 인문학 여행을 위해 미리 공부하시고 자료를 정리해서 설명해 주시는데 그 내용의 깊이는 나로서는 이해는커녕 따라 읽기도 벅찰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여행을 하고 나면 책 몇 권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여정이다. 아니 오히려 책을 읽고 나면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 이와 달리 인문학 기행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 이상의 시간적 가치인 셈이다. 여행은 길 위의 독서라고 하시며 길벗 됨을 기꺼이 자처하셨던 경산 님의 큰나무 그늘이 마냥 고맙고 그 큰 그늘 아래에서 자랄 수 있었던 시간들이 내겐 큰 복이다.
몇 년 전부터 경산 님은 여행지에서 떠오르는 감동을 짧은 언어로 함축하기 시작하셨다. 행여 불필요한 말로 생각을 어지럽힐까 걱정하시는 마음으로 줄이고 합치고 다듬고 품어서 가능하면 길지 않은 언어로 표현한 결과가 바로 이 글이다. 그러기에 한 단어 한 줄이 그냥 하나가 아니다. 한 단어지만 큰 산이고 한 줄이지만 큰 물줄기이다. 그렇게 작품 하나하나가 모아진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음 몇 개의 작품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농암종택에서
산세 좋은 청량산자락
굽이굽이 낙강 흐르고
산 좋고 물 맑은
농암종택에서 하룻밤
애일당 강각 금수정
먹물들의 쉼터
월란사 철쭉꽃 필 무렵
낙향한 은사들의 풍류 모임
산과 달과 강과 배와 술 그리고 시
흐르는 강물 위에 술잔을 띄우니
이름하여 流觴曲水
풍류의 절정
팔순 농암은 어부사를 노래하고
이순 퇴계는 도산구곡가로 화답하며
나이를 잊었다
산수는 인물을 내고
인물은 묵향을 남기고
나그네 그 묵향에 취했다
작년인가 경산 님과 함께 안동 여행을 했다. 농암 이현보 선생의 후손이 운영하는 고택에 하룻밤 머물렀는데 분강서원, 애일당, 강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한옥 고택과 그 앞에 흐르는 낙동강 상류의 맑은 물과 단애 기암절벽이 보이는 운치 있고 고즈넉한 풍경에 취하고 온 적이 있다,
산과 달과 강과 배와 술 그리고 시
흐르는 강물 위에 술잔을 띄우니
이름하여 流觴曲水
풍류의 절정
이 구절을 보면 그때 그 청량산 자락의 기운이 느껴지고 품에 안을 듯 포근하게 돌아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놓여진 풍류 배 한 척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나는 그곳에서 지금의 시대를 잊었고 묵향에 젖은 나그네가 되었다. 바로 이런 곳이기에 농암의 어부사가 나왔고 퇴계의 고산구곡가가 나왔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 여행이었고 이 시는 그 때 그 운치를 고스란히 담았다.
시골밥집에서
풍기에서 맛집을 만났다
손때 묻은
할머니 손맛이 아니다
어머니 집밥도 아니다
소백산 햇살과 바람을 모셔다
정성들인 예술이다
소백산이 키운 산나물 간간하고
풍기 특산 인삼튀김 고소하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육회
야들야들 졸깃졸깃 문어숙회
겉바속촉 표고탕수육 식감도 좋다
그리고
이 고장 선비의 술 五精酒 한 잔!
선물같은 밥상에서
내 눈과 코와 입은 하나 되어
혀는 미친 탱고를 춘다
보약으로 만든 음식
음식으로 만든 보약
찾아오는 밥집
찾아가는 식객는
이 작품을 읽으면 배가 고파진다. 먹을 것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이 시의 표현대로 ‘선물 같은 밥상’에서 ‘눈과 코와 입이 미친 듯이 탱고를 추’고 싶은 그런 허기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감동이 줄고 표현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져 우울해질 때가 있는데 경산 님의 이 표현은 가히 청춘답다. 60이 넘은 나이에 탱고를 추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 그때가 마침 예술 같은 밥상, 선물 같은 밥상을 받아들 때라는 이 위트가 읽을 때마다 미소 짓게 한다.
한탄강 때도 함께 했다. 유독 바람이 매서운 날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을 하면서 추운 겨울의 청량감으로 가슴 시원하게 느낀 날이었다. 특히 그 여행길은 경산 님의 안내로 겸재의 그림에 등장한 실제 경치를 직접 찾아가 보는 특별한 여행이었는데 화첩 ‘해악전신첩’과 ‘관동명승첩’에 포함된 철원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고석정’에서 시와 산문을 읊조린 선조들의 풍류를 느껴 보기도 하고, 한탄강 주상절리길 들머리이기도 한 ‘순담계곡’과 겸재 정선이 그려 낸 ‘화적연’과 ‘삼부연폭포’를 감상하며 시간여행을 했다.
매운 바람 따가운
텅 빈 계절
한탄강
하늘은 구름을 비우고
강물은 가슴을 열었다
자잘한 물무늬 사이로
곱디고운 모래알이 흐른다
비워서 맑아진 강물
깨끗함의 절정
비운 자의 깨끗함
당시 겸재 정선은 벗으로 지낸 사천 이병연과 함께 시와 그림으로 우정을 나누었다고 하는데, ‘하늘은 구름을 비우고 강물은 가슴을 열었다’의 표현과 ‘비워서 맑아진 강물’이라는 경산 님의 이 구절을 보고 겸재는 자기가 사랑한 철원 한탄강의 그림에 맑은 영혼을 더해주는 한 사람의 후손이 있음을 뿌듯해 하실 것이 틀림없다.
눈으로 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시로 남기는 것만 못하다고 경산 님은 시를 쓰기 시작하셨고, 깨달음이 없는 시는 남기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시에 철학을 담고 계신다. 모쪼록 앞으로도 경산 님의 여행 이야기가 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에 담긴 깨달음이 나에게 삶의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앞으로 이야기에 나도 길벗 글벗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것 같다. 다음 방학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