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기행

누정기행9 거창 요수정(樂水亭)

경산 耕山 2026. 5. 25. 04:56

요수정 난간에서


요수정 난간에 기대면
풍경이 안쪽으로 스며들어
수승대 반석 위로
봄은 천천히 흐른다

퇴계는 글로 풍경을 열고
요수는 돌에 마음을 새겼다
끝내 마주 앉지 못한 두 선비
말은 닿지 못해도
물은 닿았으리

물은 흐르고
돌은 머무는데
저 거북바위는
흐름과 멈춤이 한 자리에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물처럼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돌처럼
그 사이
내 안의 소음을 씻어낸다

樂水亭조선 중기의 저명한 학자 신권(1501-1573)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풍류를 즐기기 위해 수승대 건너편에 세운 정자로 '요수라는 호는 "智者樂水"에서 따온 것으로, 그의 맑고 고고한 성품을 잘 보여준다.

"사람의 손길은 자연의 순리를 돕는 데 그쳐야 한다"는 선비들의 겸허한 건축 철학을 보여준다

굽이치는 물살을 보며 멈추지 않는 학문의 정진을 다짐하고, 넉넉한 바위를 보며 변치 않는 지조를 되새겼을 '요수(樂水)'의 미학은 기둥 사이로 흘러드는 맑은 바람과 윤슬 속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요수정 앞 수승대의 중심 거북바위(구연암)

요수정 난간에 기대어 거북바위를 바라보면 거북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과 시들은 낙서가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이곳을 거쳐 간 지성들이 나누는 거대한 합창처럼 느껴진다.

요수정은 자연에 대드는 법이 없고, 거북바위를 휘감는 물길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퇴계가 이름을 짓고 요수가 마음을 심은 이곳 수승대에서, '나를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요수정 난간에 앉아서

오월의 수승대는 막 피어난 초록이 물빛에 번져 더 깊어 보였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갈천은 햇살을 받아 부서지고, 바람은 바위의 결을 더듬으며 천천히 지나간다. 물은 급하지 않았고, 산은 과하지 않았다. 그 사이를 걷는 나는 자꾸만 속도를 낮추게 된다. 이곳의 시간은 발걸음이 아니라 시선의 깊이로 흐르는 듯했다.

이 풍경의 중심에는 신권, 호는 요수(樂水)라 불린 선비가 있다. 그는 벼슬 대신 물가를 택했고, 이름보다 마음을 닦는 삶을 택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이황과 교유했으나, 길은 달랐다. 한 사람은 조정과 학문을 오갔고, 다른 한 사람은 자연과 학문을 포개어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본 것은 다르지 않았다. 물처럼 흐르되,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삶.
수승대라는 이름 또한 그렇게 태어났다. 본래 근심을 보내는 곳이던 수송대(愁送臺), 퇴계의 한 편지로 새 옷을 입는다. “아름다움을 찾아낸다는 뜻의 수승대(搜勝臺). 이름 하나가 바뀌자 풍경의 결도 달라진다. 직접 오지 못한 아쉬움을 시에 담아 보낸 퇴계와, 그 마음을 바위에 새겨 응답한 요수.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으나, 이곳에서는 지금도 대화를 나눈다. 물 위에 남은 것은 발자국이 아니라 마음이다.

강 건너편, 물을 마주 보고 선 요수정은 그 대화의 자리다. 정자는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 벽은 최소로 줄이고, 기둥 사이를 비워두었다. 그 빈 공간으로 거북바위와 물길이 들어온다. 이것이 차경(借景), 풍경을 빌려 완성하는 방식이다. 안과 밖이 나뉘지 않고, 바라보는 순간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구조. 요수는 자연을 소유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빌려 마음에 담았을 뿐이다.
정자 처마 밑에 걸린 '요수정(樂水亭)'이라는 세 글자는 후손인 신수이(1688~1768) 선생이 선조의 뜻을 기리며 정성껏 써 내려간 글씨다. 요수 신권이 이룬 '()의 철학'이 후손의 붓끝을 거쳐 단단한 편액으로 굳어진 셈이다. 요수정의 주인은 가고 없으나, 그 이름을 지키려는 후손의 효심과 예()가 편액의 필획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기둥에 걸린 주련은 그 풍경을 소리로 풀어낸다.

한 조각 빼어난 땅, 그 이름 수승이라 하니
천년을 흐르는 구연은 물을 즐기는 곳이라

글귀는 단정하지만, 그 울림은 물결처럼 번진다.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와 겹쳐 들으면, 글은 더 이상 글이 아니다. 흐름이다. 멈추지 않는 공부, 고이지 않는 정신. 선비들이 물을 보며 배우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끊임없음이었을 것이다.
정자에서 시선을 들면, 물 가운데 우뚝한 거북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구연암. 그 표면에는 수많은 이름과 시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빽빽함 속에서도 두 사람의 시는 또렷하다. 퇴계가 이름을 짓고, 요수가 마음을 새긴 자리. 돌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길게 남는다. 물은 그 주위를 돌며, 지워지지 않는 것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요수의 미학은 무위(無爲)에 가깝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다만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태도. 굽은 기둥은 산의 기울기를 따르고, 물길은 바위를 피해 돌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이미 그러해야 할 자리에 있다이곳에서 배우는 것은 ‘이기는 법’이 아니다. 내려놓는 법이다. 오월의 요수정을 떠나며, 나는 한 가지를 오래 붙들게 된다물이 흘러 이름을 바꾸고, 이름이 다시 마음을 바꾸던 그 순간. 결국 이곳은 풍경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는가.